사춘기와 갱년기가 겹치면 생기는 변화 (침묵의 언어, 친구 같은 엄마, 기호 찾기)
저도 처음엔 첫째 사춘기가 끝나가는 것 같아 한숨 돌렸습니다. 그런데 바로 옆에서 초6 둘째가 슬슬 기지개를 켜고 있습니다. 여기에 제 나이 40대 중반, 갱년기(更年期)까지 예고편처럼 다가오고 있으니 여자 셋이 한 지붕 아래서 어떻게 지혜롭게 이 시기를 넘길 수 있을지, 솔직히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침묵의 언어 — 말 없는 아이를 오해했던 시간들
첫째가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아이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간식을 먹고 그대로 잠들기 일쑤였고, 학원에 가야 할 시간에도 깊이 잠들어 있는 날이 반복됐습니다. 결국 수면 리듬이 무너지면서 학원까지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춘기 딸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아이가 일부러 저를 피하거나 반항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아이의 침묵은 무시가 아니라 지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표현을 비언어적 의사소통(非言語的 意思疏通, Non-verbal Communication)이라고 합니다. 말이나 글 대신 표정, 시선, 몸짓, 행동, 침묵 등을 통해 감정과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사춘기 자녀는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 침묵이나 회피 행동으로 신호를 보내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왜 말을 안 하지?"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아이는 이미 자신의 방식으로 충분히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사춘기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정리할 에너지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침묵이 가장 에너지 소모가 적은 소통 방식이 됩니다. 저는 그 침묵에 말 폭탄을 던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물어볼수록 아이는 더 깊이 숨었고, 저는 더 답답해서 또 물어보는 악순환이었습니다. 크면 뭐가 되려고 저러나 싶을 정도로 속이 터진 적도 있었습니다.
아동발달 연구에서도 청소년기 심리적 위축(心理的 萎縮)이 언어 표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심리적 위축이란 내·외부의 압박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를 표출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워킹맘으로 아이를 자주 못 보는 상황에서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걸 확인하려다 보니 제 질문들이 아이에겐 취조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싶어 뒤늦게 반성했습니다. (출처: 한국아동청소년심리건강재단)
친구 같은 엄마 — 원하는 건 같은데 방법이 틀렸다
"나는 너한테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어." 저도 이 말을 한두 번 한 게 아닙니다. 그러다 컨디션이 나쁜 날엔 "내가 니 친구가?!" 하고 언성을 높였다가, 며칠 뒤엔 또 "그냥 오순도순 대화하고 싶은 것뿐이야"라고 달래는 식이었습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 없었겠죠.
친구 같은 관계를 원하는 분들도 많은데, 저는 그 말의 뜻 자체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많이 해야 친구라는 생각이 있었는데, 실제로 친구란 내가 짐을 질 때 옆에서 같이 짊어져 주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말수보다 행동이 먼저라는 거죠.
그래서 실천해 본 게 배달 앱 검색이었습니다. 요리를 잘 못 하는 대신 아이가 먹어서 표정이 밝아지는 음식을 찾아 시켜주는 일입니다. 첫째가 어느 날 아무 말 없이 배달 온 음식을 다 비웠을 때, 그날 느낀 뿌듯함은 길게 나눈 대화 어디서도 얻지 못한 감각이었습니다. 말은 안 해도 느낀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습니다.
사춘기 자녀와 관계를 회복할 때 효과적인 접근 방식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질문을 줄이고 행동으로 먼저 다가간다 — 학교생활, 친구 관계 같은 주관식 질문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제공하는 행동이 신뢰 회복에 더 빠르게 작용합니다.
- 침묵을 반항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 에너지가 부족해서 표현 못 하는 것이므로, 반응이 없어도 계속 작은 호의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 기분이 나쁜 날엔 감정을 인정한 뒤 대화를 미룬다 — 갱년기 초입 증상이나 피로 상태에서 억지로 대화를 시도하면 오히려 갈등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 일관성을 유지한다 — "친구 같은 엄마"와 "내가 니 친구가?!"를 며칠 간격으로 반복하면 아이는 혼란을 느끼고 더 방어적이 됩니다.
둘째는 지금 초6인데 이미 하기 싫은 건 완전히 개무시하는 스타일입니다. 대꾸조차 없습니다. 이 아이에게 질문 폭탄을 던졌다간 첫째 때보다 훨씬 오래 갈 것 같아서, 지금부터 행동 먼저 방식을 미리 연습하고 있는 중입니다.
기호 찾기 — 엄마가 충전돼야 아이도 버틴다
사춘기를 겪지 않은 채 어른이 된 분들이 갱년기를 더 강하게 맞이하는 경향이 있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사춘기 때 억눌렀던 감정들이 흡수된 채로 남아있다가 갱년기라는 호르몬 변화 시기에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는 겁니다. 저는 사춘기를 크게 겪지 않은 편이라 이 말이 남 얘기 같지 않습니다.
갱년기(更年期, menopause)란 여성의 난소 기능이 저하되면서 에스트로겐 분비가 줄어드는 생애 전환기를 말합니다. 평균적으로 45~55세 사이에 나타나며, 감정 기복, 수면 장애, 집중력 저하 등 다양한 증상을 동반합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여성의 약 80%가 갱년기 증상을 경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보건복지부)
사춘기 두 명과 갱년기 한 명이 한 집에 있다는 건, 세 사람 모두 에너지가 바닥인 상태라는 뜻입니다. 이 상황에서 엄마가 먼저 자기 에너지를 어디선가 보충하지 않으면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기호(嗜好)가 여기서 중요해집니다. 기호란 특정 활동, 장소, 사람에게서 시간 감각을 잊을 만큼 몰입하게 되는 개인적 취향을 뜻합니다.
저도 이게 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거나 마트를 천천히 돌 때 시간이 훅 가더라고요. 대단한 취미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걸 이제는 압니다. 워킹맘이라 시간 자체가 빠듯하지만 주 1~2회라도 그 시간을 의도적으로 확보해두는 것이, 아이들 앞에서 제가 좀 더 여유로운 사람으로 있을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에너지 고갈(energy depletion) 상태, 즉 심신이 모두 소진되어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잔소리 랩이 나오고, 잔소리 랩이 나오면 아이는 더 입을 닫는다는 걸 첫째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첫째의 사춘기가 서서히 끝나가는 게 보이는 지금, 여름방학부터 수학 학원에 다시 가기로 했고 레벨 테스트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밤 11시 30분 휴대폰 잠금 설정 하나로 수면 패턴이 조금씩 잡히는 걸 보면서, 결국 작은 구조가 아이를 잡아준다는 걸 새삼 확인했습니다.
엄마가 처음이라는 말이 변명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저는 이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도 처음 겪는 사춘기이고, 둘째도 처음 겪는 사춘기이고, 저도 처음 겪는 갱년기 예고편입니다. 다 같이 처음인 상황에서 누군가가 먼저 힘을 비축해둬야 한다면 그게 엄마일 수밖에 없고, 그 방법이 거창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찾아 시켜주고, 제가 시간을 잊는 무언가를 주 1회라도 확보하는 것.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심리 상담이나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