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아이에게 진짜 필요한 교육은 무엇일까? (욕망 결핍, 사회적 성취, 경력단절)

카이스트에 입학한 아이들이 정작 "이제 뭘 해야 하냐"고 묻는다는 사실, 처음 들었을 때 저는 꽤 오래 멍했습니다. 명문대 합격이 골인 지점이 아니라 오히려 길을 잃는 출발점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 구조가 제가 두 아이를 키우며 겪어온 20년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AI 시대


욕망 결핍: 시키는 대로 잘하는 아이가 더 위험하다

욕망 결핍(欲望 缺乏)이란 스스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를 뜻합니다. 결핍이 있어야 욕망이 생기는데, 무언가를 갖고 싶다고 느끼기 전에 이미 눈앞에 대령되어 있으면 욕망 자체가 자라지 못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건 단순히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도 돌아보면 비슷했습니다. 첫째가 태어나자마자 세상의 중심이 아이로 이동했고, 그게 당연한 일이라 믿었습니다. 일을 그만뒀고, 주말부부였던 탓에 두 아이를 사실상 혼자 키웠습니다. 양가에서는 처음부터 육아는 알아서 하라고 선을 그으셨고, 그 환경에서 저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스스로 욕망할 시간을 갖지 못한 채 주어진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뇌과학적으로 보면 자율성(Autonomy)은 뇌의 보상 회로를 활성화시키는 핵심 조건입니다. 자율성이란 외부 강제가 아닌 자기 내면에서 나온 동기로 행동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아이가 게임에는 몇 시간이고 집중하면서 공부는 미루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게임은 스스로 선택한 자극이고, 공부는 외부에서 부여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잔소리가 통하지 않는 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뇌 구조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랫동안 이 자율성을 철저히 제거하는 방식으로 아이를 키워왔습니다. 학원 스케줄, 선행학습, 레벨 테스트, 특목고 준비. 아이가 욕망을 꺼내 들기도 전에 다음 단계가 이미 세팅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카이스트에 들어간 아이가 "저 이제 뭐 해요?"라고 묻는 겁니다. 솔직히 이 장면이 예상 밖이었다기보다, 너무 당연한 결과라서 오히려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사회적 성취: AI가 대체할 수 없는 딱 하나의 영역

사회적 성취(Social Achievement)란 단순히 좋은 직장을 얻거나 높은 연봉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의미 있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세상에 기여하는 경험을 뜻합니다. 지금 시대에 이게 중요한 이유는 명확합니다. 한 줄 세우기 경쟁의 맨 앞에 이미 챗GPT와 클로드 같은 생성형 AI(Generative AI)가 서 있기 때문입니다. 생성형 AI란 텍스트, 이미지, 코드 등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인공지능을 말하며, 지식을 빠르게 처리하고 출력하는 일에서는 인간보다 월등히 효율적입니다.

기업들이 공채를 현저히 줄이기 시작한 건 이미 현실입니다. 고용노동부의 고용 동향 자료에서도 대졸 신규 채용 방식이 수시·직무 중심으로 급격히 재편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이제 묻는 질문은 바뀌었습니다. "수능 몇 점이야?"가 아니라 "AI가 못 하는 거, 인터넷에 없는 생각, 네 고유한 스토리가 뭐야?"입니다.

제가 경험상 확신하는 건,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어릴 때부터 직접 뭔가를 만들고 실패해본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실제로 카이스트 같은 곳에서 실험 중인 수업 방식이 있습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어 보는 프로젝트형 수업으로, 학생 스스로 사회 문제를 발굴하고 직접 해결책을 설계합니다. 이 과정에서 협업 능력, 갈등 해결, 실패 내성 같은 역량이 길러집니다. 이것이 바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AI 시대에 아이에게 꼭 키워줘야 할 역량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자기 생각을 언어로 정리하는 능력: 인터넷에 없는 본인만의 관점을 만들어내는 힘
  2. 세상의 문제를 직접 발견하는 능력: 데이터를 받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정의하는 힘
  3. 사람과 협업하고 갈등을 풀어가는 능력: 감정을 읽고, 관계를 유지하며, 갈등을 해결하는 사회적 지능
  4. 실패를 견디는 내성: 정답만 찾도록 훈련된 뇌가 아니라 불확실 속에서 계속 시도하는 태도

제 두 아이들을 보면서 이 네 가지가 얼마나 채워져 있는지 가끔 조용히 짚어봅니다. 솔직히 부족한 부분이 많다는 걸 압니다. 그리고 그 책임의 일부는 저에게도 있습니다.


경력단절: 엄마의 삶과 한 인간의 삶 사이에서

경력단절(Career Interruption)이란 출산, 육아, 가사 등을 이유로 직장 생활을 중단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경력단절 여성은 약 134만 명으로, 여전히 30~40대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숫자 안에 포함된 한 사람이었습니다.

첫째가 중학교 2학년, 둘째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시점에서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엄마로서의 삶은 가득했지만 한 인간으로서 제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40대 중반이 되어 세상을 다시 보니 사회에서 제가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의 기어는 거의 바닥 나 있었습니다. 이게 제가 직접 겪어서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때 좀 더 깊이 생각했더라면 달랐을까, 자주 떠올립니다. 아이에게 헌신하는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연결을 완전히 끊는 것은 결국 아이에게도 좋은 모델이 되지 못한다는 걸, 저는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 자아효능감(Self-Efficacy)이란 자신이 어떤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스스로의 믿음을 뜻하는데, 이것은 사회 속에서 부딪히고 성취하면서만 길러집니다. 집 안에서의 헌신만으로는 자아효능감이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아이들에게, 특히 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엄마의 삶을 선택하더라도 당신 자신의 삶을 동시에 가져가라고. 백세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아이 곁에 있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사회에서 얻는 성취감과 정체성도 함께 키워가야 한다고. 그게 결국 아이에게도 더 건강한 모델이 됩니다. 아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달려갈 때, 저도 지금의 자리에서 다시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기꺼이 황혼 육아에 동참할 각오는 있지만, 그때의 저는 지금보다 조금 더 온전한 제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AI 시대 교육의 진짜 문제는 커리큘럼이 아니라 목표 설정에 있습니다. 대학 입학을 교육의 종착점으로 보는 한, 카이스트에 들어가도 길을 잃는 아이가 계속 나옵니다. 아이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실패해볼 기회를 주고, 스스로 욕망해보도록 여백을 남겨두는 것. 그게 지금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 대안을 실천하는 부모 자신도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강력한 교육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YSCCqFtDI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