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자녀와 대화가 어려운 이유, 부모가 꼭 알아야 할 심리와 대처법 (암흑기, 부모 역할, 회복)

서울대 재학생 75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부모가 해준 가장 좋았던 행동 1위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장해 준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수치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허탈했습니다. 그동안 대화를 많이 나눠야 좋은 부모라고 굳게 믿어왔으니까요.





암흑기: 중2병이 절정에 달했던 그 시절

첫째가 중학교 2학년이던 기말고사 시즌이 있었습니다. 내일 시험인데 학교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밥 먹고, 놀다가, 그대로 잠들어버리는 날이 반복됐습니다. 늦은 저녁에 겨우 눈을 뜨더니 공부할 생각은 없고 멍하니 누워만 있었습니다. 고작 중학교 2학년인데 마치 인생을 다 살아버린 사람처럼요. 한동안 저는 속으로 '우리 집에 다 큰 신생아가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습니다.

그 시기를 가리키는 말 중에 분리개별화(Separation-Individuation)라는 발달심리학 용어가 있습니다. 분리개별화란 아이가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면서 자아를 형성해가는 과정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나는 엄마 아빠와 다른 별개의 존재다"라는 걸 온몸으로 증명하려는 시기입니다. 그러니 부모가 말을 걸수록, 간섭할수록 더 문을 닫아거는 겁니다. 당시엔 이게 뭔지도 몰랐으니 저는 그냥 막막했습니다.

여름방학이 다가올 땐 진심으로 겁이 났습니다. 학원도 안 다니고 학교에만 겨우 나가던 아이에게 방학은 그야말로 무제한 방치 시간이 될 것 같았으니까요.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만들었습니다. 아침 8시까지 일어나면 그날 추가 용돈 1,000원을 주기로 한 것입니다. 거창한 교육 철학이 아니라 그냥 궁여지책이었는데, 이틀째 되던 날 실제로 일어나더군요. 2,000원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그게 어찌나 기뻤던지요.

이 시기 부모들이 흔히 빠지는 함정 중 하나가 귀인오류(Attribution Error)입니다. 귀인오류란 아이의 행동 원인을 '아이 탓' 혹은 '배우자 탓'으로만 돌리는 인지적 오류를 말합니다. "너 닮아서 그래", "내가 이렇게 키웠는데 왜 이 모양이야" 같은 말이 대표적입니다. 제 경험상 이 말은 아이에게 향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부부 사이를 먼저 갈라놓습니다.


부모 역할: 설문이 뒤집어 놓은 상식들

앞서 언급한 서울대 재학생 75명 설문은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부모가 했던 행동 중 가장 싫었던 것 2위가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매일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관심의 표현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그 질문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귀찮음과 피로감이었던 겁니다. 저도 이 대목에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설문 결과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가장 싫었던 것 1위: 노크 없이 방에 들어오는 것 (방 청소 포함)
  2. 가장 싫었던 것 2위: 오늘 하루 있었던 일 물어보기
  3. 가장 싫었던 것 3위: 시험 결과에 따라 부모의 감정이 달라지는 것
  4. 가장 싫었던 것 4위: 잔소리와 타인과의 비교
  5. 가장 좋았던 것 1위: 혼자만의 시간을 보장해 준 것 (압도적 1위)
  6. 가장 좋았던 것 2위: 힘들다고 말하면 솔루션 없이 공감만 해준 것
  7. 가장 좋았던 것 3위: 말을 자주 걸지 않아 준 것
  8. 가장 좋았던 것 4위: 맛있는 음식, 야식

3위를 보고 저는 한참 멍했습니다. '말을 걸지 않은 것'이 좋았다는 게 데이터로 나온 겁니다. 대화를 많이 나눠야 좋은 부모라는 공식이 최소한 사춘기 시기만큼은 정반대로 작동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무조건 침묵하라는 게 아니라, 아이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이 핵심입니다.

시험 결과에 따라 부모의 태도가 달라진다는 항목은 더 깊은 문제로 이어집니다. 조건부 사랑(Conditional Love)이라는 개념이 여기서 등장합니다. 조건부 사랑이란 성과나 결과가 좋을 때만 애정을 보여주는 방식을 뜻합니다. 아이들은 이걸 기가 막히게 감지합니다. '내가 시험을 잘 봐야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구나'에서 더 나아가 '내가 쓸모 있어야 존재할 자격이 있다'는 방향으로 사고가 이동하는 겁니다. 이것이 청소년 우울의 한 경로라는 것을, 당시엔 저도 몰랐습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청소년 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출처: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중학생의 자아존중감 하락 시기와 부모로부터 조건부 반응을 경험하는 빈도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수치가 문제가 아니라 아이가 문제인 게 아니라는 것, 부모의 반응 방식이 아이의 내면을 구성한다는 것입니다.


회복: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보이는 것들

첫째는 지금 완치 단계가 머지않았다는 게 보입니다. 그 시절 절대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대화가 슬슬 다시 생겨나고 있고, 스스로 수학학원과 영어학원을 8월부터 다시 다니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강요한 게 아닙니다. 새로 간 수학학원 원장 선생님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부터 시작해서 수학만 잘한다고 빛을 볼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제가 평소에 똑같은 말을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하더니 선생님 말씀에는 아이가 반응하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좀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그게 사춘기라는 것도 압니다.

그런데 첫째가 좀 잠잠해지나 싶었더니, 초등학교 6학년 둘째가 발동이 걸리기 시작했습니다. 방문을 잠그고 거실로 잘 나오지 않습니다. 덕분에 저는 거실에서 꽤 조용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됐는데, 이게 덕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둘째는 자기 할 일은 하고 고집을 부리는 스타일이라 학원을 빠지거나 하는 걱정은 아직 없습니다.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어려움이나 역경을 겪은 뒤 이전 상태로 되돌아오거나 더 성장하는 심리적 능력을 뜻합니다. 아이들의 회복탄력성은 부모가 폭풍 속에서도 곁에 있어 줬다는 기억을 바탕으로 자랍니다. 시험 결과를 보고 낙담하는 것보다, 망치고 들어온 날 "수고했다"라고 한마디 건네는 것이 훨씬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이제는 압니다. 모의고사를 망쳤을 때 들은 "그래, 수고했어"라는 한마디를 대학생이 되어서도 기억한다는 설문 응답이 가장 마음에 걸렸습니다.

자녀 청소년기의 정신건강 지원에 대해서는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위기상담 전화나 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을 통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사춘기를 잘 보내는 법이 뭐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다만 첫째를 보면서 하나는 알게 됐습니다. 폭풍은 결국 지나간다는 것, 그리고 그 시간 동안 손을 놓지 않는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지금 암흑기 한복판에 있는 부모님이라면, 그 사실 하나만 붙잡아도 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6-2iTgVL4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