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자녀와 대화가 어려운 진짜 이유 (존중, 인정, 심리적지지)

아이가 중학교에 올라가고 나서 갑자기 말이 없어진 경험, 부모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겁니다. 저도 첫째가 그 시기를 지나면서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싶은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사춘기 자녀와의 대화에서 존중, 인정, 심리적 지지가 왜 핵심인지, 직접 겪어보니 이론보다 훨씬 더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사춘기 자녀 대화



존중: 아이를 고쳐 쓰려 하지 않는다는 것

저는 오래전부터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교육관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었죠. 그 영향인지 아이들이 유치원 때부터 스스로 옷을 골랐습니다. 신발이며 가방, 심지어 머리끈 하나도 아이가 원하는 걸 해주려 했습니다. 계절에 맞지 않는 선택을 할 때는 "이건 안 돼"가 아니라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어려도 부당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제 나름대로 노력한 셈입니다.

자율성(Autonomy)이란 개념이 있습니다. 자율성이란 외부의 강요 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청소년 심리 연구에서는 이 자율성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 반항이나 무기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아이가 갑자기 돌변한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오래전부터 쌓여온 억눌림이 터진 경우가 많다는 거죠.

존중한다는 게 모든 걸 허용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경멸하는 말, 무시하는 말, 소리 지르는 것, 강제로 시키는 것. 이런 것들이 빠진 상태에서 대화하는 것이 존중의 기본선입니다. 청소년 자녀가 욕을 하거나 거친 말을 쏟아낼 때, 똑같이 맞불을 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저는 그 상황을 겪어봤고, 솔직히 말하면 맞불을 놓은 날은 어김없이 후회했습니다. 45세 어른이 15세 아이와 감정싸움을 하고 나면, 이기든 지든 남는 게 없더라고요.

존중이 무너지기 쉬운 상황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 끊어버리는 경우
  2. 아이의 의견을 듣고 나서 "그게 말이 되니?"로 마무리하는 경우
  3. 감정이 격해진 상태에서 과거의 잘못을 함께 꺼내는 경우
  4. 아이가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고 문을 열거나 강제로 대화를 시도하는 경우

이 중 하나라도 습관적으로 하고 있다면, 아이가 점점 말을 닫는 이유를 거기서 찾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정: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가 왜 그렇게 셀까

등교 거부를 하던 중학생이 학교를 다녀왔을 때, 엄마가 딱 한 마디를 바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가 아니라 "학교 가기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갔다 왔네. 수고했어." 그 한 마디에 아이가 표정이 싹 바뀌면서 말했다고 합니다. "엄마, 나 그 말 듣고 싶었어."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 저는 좀 멍했습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닌데, 왜 우리는 그 말을 안 하고 살았을까 싶어서요.

인정의 언어(Validation)란 상대방의 감정과 경험이 충분히 이해될 만하다고 확인해 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네 마음이 그럴 수 있다"고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아이가 학교를 가기 싫어할 때, 그 감정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왜 가기 싫어, 다들 가잖아"가 아니라 "그게 힘들구나"라고 받아주는 것. 이게 전제가 되어야 그 다음 대화가 열립니다.

제 경험상 이건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완전히 같았습니다. 저도 오랫동안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구박부터 했는데, 어느 날부터 "오늘도 열심히 했겠다, 수고했어"로 바꿔봤습니다. 관계가 달라지는 게 느껴졌습니다. 인정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애씀을 내가 보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것이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이 부모로부터 정서적 인정을 받을 때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이 높아지고 문제 행동이 감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기효능감이란 자신이 어떤 상황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합니다. 칭찬과는 다릅니다. "잘했어"가 아니라 "힘들었을 텐데 해냈구나"가 자기효능감을 키웁니다.

저도 실제로 써보니, 인정의 말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아이가 한창 감정이 올라와 있는 순간에 하는 게 아니라, 조용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틈에 던지는 쪽이 훨씬 잘 닿더라고요.


심리적 지지: "I am here for you"가 왜 부모만 줄 수 있는 말인가

심리적 지지(Psychological Support)란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있든 내가 곁에 있다는 안정감을 지속적으로 전달하는 것입니다. 단순히 "힘내"가 아니라 "네가 필요할 때 내가 여기 있다"는 존재감의 확인입니다. 부모가 이걸 줄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부모는 아이의 어떤 행동에도 관계가 끊기지 않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다 등을 돌려도 부모는 남는다. 이건 이상론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그런데 그 부모한테 "네가 그러니까 그렇지, 말을 해도 안 되니?"라는 말을 듣는다고 상상해 보면, 그 아이에게 남은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는 셈입니다. 아이 입장에서는 어디에도 설 곳이 없는 느낌이 드는 거죠.

일부에서는 심리적 지지를 강조하면 아이의 나쁜 행동을 묵인하게 된다고 우려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 논리가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실제로 해보니 달랐습니다. "행동은 잘못됐지만 너는 사랑한다"는 두 메시지가 충분히 동시에 전달됩니다. 행동을 미워하되 아이를 미워하지 않는 것, 영어로는 "Hate the sin, not the sinner"라고 표현하는데, 이 구분이 되지 않으면 아이는 행동이 아니라 자신 자체가 부정당한다고 느낍니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 정책에서도 청소년기 정서적 안전망 형성을 위한 가족 내 지지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정이 안전기지(Secure Base)가 되어야 아이가 바깥에서 부딪히고 돌아올 수 있다는 논리입니다. 안전기지란 아이가 두려움 없이 탐색하고 돌아올 수 있는 감정적 근거지를 뜻합니다.

저는 두 아이를 키우면서 신생아 때도 유아기 때도 힘들었지만, 솔직히 지금 이 시기가 제일 어렵습니다.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고 저도 말을 할 수 있는데, 그 말들이 엇갈릴 때의 무력감은 기저귀 갈던 새벽과는 질이 다릅니다. 표현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걸, 이 시기에 더 절감하게 됩니다. 첫째의 사춘기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에 둘째의 사춘기가 다가오는데, 두 아이의 성향이 닮은 듯 너무 달라서 또 다른 긴장감이 앞서는 것도 사실입니다.

결국 사춘기 자녀와의 관계에서 중요한 건 완벽한 말을 찾는 게 아니라, 틀린 말을 줄이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존중하고, 애씀을 인정하고, 곁에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잘 되는 날은 솔직히 많지 않습니다. 그래도 방향을 알면 조금씩 달라집니다.

 오늘 한 마디라도 바꿔보는 것이 시작입니다. "수고했어"라는 말 한마디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JO8gE0dUrdk